체르마트의 고요한 아침. 하늘은 푸르고, 알프스의 봉우리들은 눈을 이고 있었다. 유나와 민준은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산자락에서 느꼈던 맑은 공기와 설경은 두 사람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또 다른 도시, 또 다른 이야기를 품은 곳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의 심장, 밀라노(Milano).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열차는 꾸준히 남쪽으로 달렸다. 차창 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알프스 산맥의 설경과, 그 아래 펼쳐진 푸른 초원, 그리고 간간이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유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말했다.
“이 풍경, 꼭 그림 엽서 같아요.”
민준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길이라면 몇 시간이든 지루하지 않네요.”
약 3시간 30분의 여정을 지나 도착한 밀라노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기차역 밖으로 나서자, 세련된 도시의 공기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클래식한 건물들과 현대적인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거리, 거리마다 흘러나오는 이탈리아 음악, 그리고 시끌벅적하지만 어디선가 낭만이 묻어나는 사람들의 모습. 유나는 첫눈에 이 도시에 매혹되었다.
그들이 선택한 숙소는 도심 중심가의 작은 부티크 호텔이었다. 아늑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 그리고 무엇보다 창문을 열면 도시의 소리가 은은하게 들어오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밤에는 길거리의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거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나는 그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며 속으로 말했다. ‘아, 이 도시에는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일정은 누구나 밀라노에 오면 반드시 찾는 장소,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 대성당 앞 광장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수백 개의 첨탑과 정교한 석조 조각들. 유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다가 감탄했다.
“이걸 몇 세기에 걸쳐 지었다니 믿기지 않아요. 살아 있는 예술이네요.”
민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옥상 전망대도 올라가 볼까요?”
옥상에 올라서자, 밀라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빨간 지붕들이 촘촘히 이어지고, 멀리서는 이탈리아의 햇살이 도시를 감싸 안고 있었다.
대성당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명소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가 있었다. 고풍스러운 유리 천장과 모자이크 타일이 바닥에 정교하게 펼쳐진 이 공간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다. 명품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거리 악사들의 음악과 커피 향이 어우러져 있었다. 유나는 가게마다 발걸음을 멈추며 눈을 반짝였다.
“여기서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이탈리아 패션의 정수를 느낄 수 있어요.”
점심은 근처 전통 이탈리아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유나는 리조또 알라 밀라네제, 민준은 피자 마르게리타를 시켰다. 고소한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사프란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갓 구운 피자의 바삭한 식감은 그 어떤 요리보다 만족스러웠다. 민준은 와인 잔을 들며 말했다.
“다음엔 진짜 와인 투어도 가봐요. 이탈리아 와인, 제대로 한 번 느껴보고 싶네요.”
오후에는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을 찾았다. 이곳에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이 보존되어 있었다. 철저한 인원 제한과 시간 관리 덕분에 조용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유나는 눈앞의 거대한 벽화를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이건 그림이라기보다… 영혼이 담긴 기록 같아요.”
민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500년 전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져요. 이탈리아는, 정말 예술과 함께 사는 나라네요.”
저녁이 되자 두 사람은 나빌리오 운하 지구를 찾았다. 해 질 무렵, 운하를 따라 난 골목에는 다양한 카페와 바들이 늘어서 있었고, 테라스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와인을 기울이고 있었다. 거리에는 버스킹 음악이 흐르고, 운하 수면 위로는 노을이 잔잔히 비쳤다.
민준이 와인 한 잔을 유나에게 건넸다.
“이곳에서의 밤은 특별하네요. 오늘 하루, 밀라노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에요.”
유나는 미소 지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래요. 여행은 결국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죠. 낯선 도시에서의 작은 기쁨들.”
그날 밤,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쉬워 눈을 자주 돌렸다. 밀라노의 하루는 짧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도시의 세련됨, 예술,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함께한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다.
✈️ 여행 팁: 밀라노
- 나빌리오 운하 지구: 저녁 산책과 저녁 식사에 최적. 주말에는 라이브 음악과 벼룩시장도 열려 현지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다.
- 가는 법: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밀라노까지 기차로 약 3시간 30분. 국경 통과 시 여권 필수
- 밀라노 대성당: 입장료 약 35유로. 옥상 전망대는 추가 요금 (약 10유로). 온라인 예약을 통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쇼핑과 사진 촬영에 이상적인 장소. 바닥 중앙의 황소 문양을 세 바퀴 돌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도 있음
- 최후의 만찬: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내 위치. 최소 한 달 전 예약 필수. 입장 인원과 시간 제한 엄격
- 음식 추천: 밀라노식 리조또(리조또 알라 밀라네제), 피자 마르게리타, 이탈리아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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