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뮌헨, 궁전의 호숫가에서 마주한 마음
아비뇽에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나와 민준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이번에는 야간 열차였다. 유럽의 밤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 안, 익숙한 덜컹임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이 마치 또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둘은 창가 쪽 좌석에 나란히 앉아, 말을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조용한 교감이 오갔다. 민준이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기차에서 자는 것도 벌써 세 번째네.”
유나는 옅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젠 집보다 편한 것 같기도 하고.”
기차는 새벽이 다가올 무렵 독일의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직 도시의 잠이 덜 깬 듯 조용했다. 파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뮌헨은 단정하고 안정적인 기운을 풍기는 도시였다. 거리마다 가지런히 정돈된 건물과 아침 햇살이 닿은 회색 돌길 위로 그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레 얹혔다.
잠시 역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허기를 달랜 후, 유나는 핸드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확인했다. 저장해 두었던 목록에서 손가락이 멈춘 곳은 바로 ‘님펜부르크 궁전’이었다.
“여기, 가볼래요? 트램 타면 금방이래.”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궁이라니, 독일스러운 하루의 시작이겠네.”
트램 17번을 타고 도심을 조금 벗어나자, 점점 건물 대신 푸른 나무와 넓은 들판이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Schloss Nymphenburg’ 정류장에서 내리자,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궁전은 말 그대로 동화 속 장면이었다. 길게 뻗은 수로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들,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 궁전의 외벽, 그리고 그 앞에서 서로 말없이 숨을 들이키는 두 사람. 유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굳이 말을 해야 할까. 그냥 이 순간을 느끼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궁전 내부는 압도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대리석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화려한 금박 장식의 거울과 정교하게 그려진 천장화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느 방은 왕이 실제로 머물던 침실이었고, 또 다른 방은 귀족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었다. 고요한 궁 안에는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머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유나와 민준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그 화려한 실내가 아니었다. 그들은 궁전을 지나 정원을 가로질러, 궁전 뒷편에 조용히 자리한 작은 호숫가로 향했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수면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살짝 흔들렸다. 멀리 백조 한 쌍이 호수 가운데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고,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둘은 한참을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민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이 여행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유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민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만큼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마음은 단단했다.
“이 여행이 끝나도, 이 기억은 계속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같은 마음이네요.”
그날 저녁, 둘은 마리엔 광장 근처에 있는 전통적인 독일 맥줏집을 찾았다. 어두운 나무 테이블에 앉아 프레첼과 바이스부르스트, 커다란 맥주잔이 앞에 놓였다. 맥주잔을 들며 민준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여행과… 앞으로의 모든 여행에.”
유나도 잔을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그리고, 당신과 나에게.’
그날의 맥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맛이었다. 알싸하지만 따뜻했고, 두 사람의 사이처럼 깊고 부드러웠다.
✈️ 여행 팁: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 가는 법: 뮌헨 중앙역에서 트램 17번 탑승, ‘Schloss Nymphenburg’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 5분 거리.
- 운영 시간:
- 4월~10월: 09:00~18:00
- 11월~3월: 10:00~16:00
-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궁전 내부 입장권: 8~15유로 (전시 구성에 따라 변동)
- 정원과 외부 산책로: 무료 개방
- 주요 볼거리:
- 금장 장식의 ‘거울의 방’
- 왕실 침실과 천장화
- 마차 박물관 (역사적 마차와 의상 전시)
- 궁전 뒤편 호수와 작은 궁전들 (Amalienburg 등)
- 여행자 팁:
- 날씨 좋은 날, 호숫가 주변 산책은 필수
- 백조들과 함께 사진 찍기 좋은 명소
- 정원 내 벤치에 앉아 간식이나 커피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