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셋째 날 아침, 유나는 창밖으로 비치는 부드러운 햇살에 눈을 떴다. 오늘은 여행 중 가장 기대되던 날이었다. 그녀는 베르사유로 향할 준비를 하며 마음속으로 하루를 그려보았다. 역사 속 왕과 귀족들이 거닐었을 그 정원과 궁전을 직접 걸을 생각을 하니, 몸도 마음도 가볍게 느껴졌다.
민준과는 전날 밤 연락이 닿았다. 여행 중 따로 움직이던 둘은 오늘만큼은 함께 궁전을 보기로 했다. 파리 중심에서 RER C선을 타고 약 한 시간가량 이동하면 베르사유 샹티에역에 도착한다. 열차는 도시의 회색 빌딩들을 지나 들판과 작은 마을을 가로지르며 외곽으로 향했고, 차창 밖 풍경은 점점 평화로워졌다. 유나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 여행 중 잠시 잊고 있던 설렘을 다시 꺼내 들었다.
역에 도착해 나서자, 멀리서부터 황금빛으로 빛나는 베르사유 궁전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을 받은 금빛 장식은 눈부시게 빛났고, 그 위엄은 멀리서도 느껴졌다. 궁전 앞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유나는 군중 사이에서 민준을 발견했고, 두 사람은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미리 예약해 둔 전자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 줄을 통과했다. 덕분에 긴 대기 시간 없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궁전 내부는 말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벽마다 금장 장식과 화려한 벽화가 가득했고, 천장에는 수백 년 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그림들이 펼쳐졌다. 특히 ‘거울의 방(Hall of Mirrors)’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거울로 된 벽면과 맞은편의 대형 창문들, 그리고 수십 개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빛을 반사하며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나는 잠시 말을 잊은 채 그 공간에 서 있었다. 루이 14세가 이 방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어떤 권력의 결정이 이뤄졌을지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
하지만 진정한 감동은 궁전 밖,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베르사유 정원은 단순한 조경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정원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구성되어 있었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나무들과 계절의 꽃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봄꽃들이 활짝 핀 꽃밭은 수채화처럼 다채롭고 풍성했으며, 중앙 분수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물을 뿜어내듯 생동감 넘쳤다.
“이런 곳이 진짜 존재한다는 게 신기해요.” 유나가 눈을 빛내며 감탄하자, 민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원 하나에 이런 철학과 권력이 담겨 있다니… 프랑스 왕실의 자존심이 그대로 느껴져요.”
두 사람은 정원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오랑주리 정원 아래로 향했다. 이곳은 비교적 한적했고, 햇살이 포근히 드는 벤치 하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준이 가방에서 준비해 온 바게트 샌드위치를 꺼냈고, 유나는 프랑 드 쥬스와 라뒤레에서 사온 마카롱을 꺼내 함께 나누었다. 피크닉처럼 꾸민 이 작은 식사는 하루의 정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고소한 바게트 속 신선한 햄과 치즈, 아삭한 채소가 어우러져 입안을 가득 채웠고, 마카롱은 부드럽게 녹으며 단맛을 더했다.
멀리서는 실내악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분수대 주변을 맴돌았다. 햇살, 음악, 봄바람, 그리고 향긋한 꽃내음이 어우러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완벽한 오후였다.
“여기, 조금만 더 앉아 있어도 돼요?” 유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민준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오늘 하루는 파리보다 이 정원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날 유나는 베르사유에서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본 것이 아니라, 현재의 풍경 속에서 스스로도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의 본질이란, 아마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 여행 팁: 베르사유 궁전
- 가는 법: 파리 시내에서 RER C선을 타고 Versailles Château Rive Gauche 역 하차 후 도보 약 10분 소요.
- 입장료: 궁전+정원 통합권 약 20~30유로 (시즌 및 연령에 따라 다름), 사전 온라인 예약 시 대기 줄 생략 가능.
- 운영 시간: 궁전 09:00–18:30, 정원 08:00–20:30 (계절에 따라 상이함).
- 팁: 정원이 넓어 걷기 편한 운동화 착용 필수. 정원 전용 셔틀 기차(Le Petit Train)를 이용하면 주요 지점을 효율적으로 이동 가능. 미리 도시락이나 간식 준비해 정원 벤치에서 피크닉을 즐겨보는 것도 추천.
- 주의사항: 궁전 내부 관람은 평균 2시간, 정원은 전체를 도보로 보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동선 계획이 중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