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광장…
로마에서의 숨 가쁜 일정을 마치고, 유나와 민준은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며칠 전 플로렌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두오모 성당과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다리 같은 대표 명소를 중심으로 빠듯하게 움직였던 탓에, 도시의 진짜 얼굴을 천천히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조금은 다른 플로렌스를 만나보기로 했다.
민준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유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엔 좀 느긋하게 다니자. 그냥 걷다가 멈추고, 생각나면 앉아 있고, 그런 여행.”
유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내가 바라던 스타일이야.”
그날 오후, 두 사람은 피렌체의 남쪽 언덕 위에 자리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오래된 돌계단을 올라 광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서서히 수평선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은 도시를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감싸 안았고, 붉은 기와 지붕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르노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저 멀리 두오모의 커다란 돔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광장 끝 가장자리에 놓인 벤치에 앉은 유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따스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리 악사의 잔잔한 기타 소리가 이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여기서 보는 노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네요.” 유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아요.”
민준은 카메라를 꺼내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이건 그냥 눈에 담기엔 너무 아까워. 기록해두고 싶어.”
그의 말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노을이 완전히 하늘을 물들이는 순간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하늘은 주황빛에서 핑크빛, 그리고 짙은 보라색으로 점차 변해갔다. 유나는 그 색들의 변화가 마치 삶의 흐름 같다고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자신조차도 언젠가는 이 장면을 잊을지도 모르지만, 감정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았다.
해가 완전히 진 후, 둘은 미켈란젤로 광장 아래쪽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와인 바에 들어섰다. 붉은 벽돌 외관과 나무 간판이 눈에 띄는 그곳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처럼 보였다. 테이블마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가게 안은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바텐더에게 추천을 부탁하자, 그는 웃으며 토스카나산 키안티 와인을 권했다. 와인 한 잔이 놓이자 유나는 잔을 조심스레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럽다… 약간의 산미가 있는데, 기분 좋은 느낌이에요.”
민준도 잔을 들어 유나와 건배했다.
“오늘 같은 날엔, 딱이야.”
와인을 마시며 두 사람은 그날의 풍경과 감정을 천천히 되짚었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시간조차 소중하게 느껴졌고, 복잡한 현실은 잠시 잊힌 듯했다.
저녁 식사는 구시가지에 위치한 가족 운영의 작은 트라토리아에서 했다. 골목 안쪽에 자리한 그곳은 외관은 소박했지만 내부는 따뜻하고 환한 분위기였다. 작은 촛불이 놓인 테이블, 벽에 걸린 오래된 흑백 사진들, 주인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까지, 마치 오랜 친구 집에 초대된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브루스케타는 갓 구운 빵 위에 신선한 토마토와 바질, 올리브오일이 어우러져 심플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고, 메인 요리로 나온 치안티 와인을 곁들인 토스카나 스튜는 깊고 진한 풍미로 여행의 피로를 녹였다.
“여기 음식은 정말 정성 가득이에요.” 유나가 감탄하듯 말했다.
“그냥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네요.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맛?”
민준은 유나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우리가 처음 여행 왔을 때보다 더 가까워진 기분이야.”
저녁이 깊어지자, 둘은 트라토리아를 나와 숙소까지 이어진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피렌체의 밤은 낮보다 조용하고, 조명 아래 비친 오래된 건물들은 마치 숨을 쉬는 듯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거리의 돌바닥을 밟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연주, 그리고 옅은 밤공기가 어우러지며,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플로렌스는… 참 사람 냄새 나는 도시 같아요.” 유나가 입을 열었다.
“그 어디보다 따뜻하고 진실한 느낌이에요.”
민준은 유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건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함께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말없이 흐르던 공기가 조금 더 깊어졌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들이 마주한 황금빛 노을과 피렌체의 밤은 영원히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 여행 팁: 미켈란젤로 광장 & 플로렌스 야경
- 가는 법: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버스 또는 도보 약 20분
- 입장료: 없음. 도시 전경과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무료 명소
- 추천 시간대: 해지기 1시간 전 도착 권장 (계절 따라 노을 시간 확인 필수)
- 와인 바 팁: 광장 주변 골목의 현지 와인 바에서 여유로운 한 잔 추천
- 식사: 구시가지 트라토리아에서 전통 토스카나 요리 꼭 경험해보기
- 산책 코스: 노을 후 시내 골목길 산책은 피렌체의 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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